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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ister Mary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이


송아지가 자라서 소가 되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목에 멍에를 씌웁니다.

그러나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는

멍에 자체가 고통스럽고 불편해서 멍에를 메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멍에를 메고 훈련을 하게되면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는 소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예레미야 31장 18절 말씀을 보다가 내가 바로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이

멍에를 메기 싫어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려네’ 찬송을 부르며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저는 멍에에 익숙해지기 싫어하는 송아지처럼 살았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벳세다 광야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격 스러우며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는 잔치에

나도 함께 있어 영광과 감격을 누리기를 원하였지만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멍에를 나도 져야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달픈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갈등과 회의를 느끼는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고 ,

성공과 부흥을 기대하는 자리에 실패와 침체가 자리 잡기 시작하고,

조건과 환경을 통해 주어지는 고난때문에 살아야 할 목적과 기쁨이 사라져버리면

갈등과 고민으로 삶의 터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어찌 이리 무심하신가,,,

하나님께서는 왜 이리 야속하신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많고

감격스러운 부흥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밋밋한 일상을 살아가는

어느 때,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신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새 우리가 따뜻한 정이 흐르는 질그릇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꽃과 나비가 새겨진 화려한 도자기가 아닌

따뜻하고 순박한 질그릇이 되게 하시고

그곳에 보배이신 예수님을 담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큰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8)


한계 앞에서 절망한 자리가 우리의 끝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하고 실패한 자리에 우리를 그대로 두시고 ‘이제 끝이다’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실패와 절망의 자리에서 회복 시키시고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새소망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마가복음 2장에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중풍병 환자를 데리고 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5)

이 말을 들은 율법학자들이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구나.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중풍병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되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걸어라' 하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려고 그랬다. 예수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중풍병자는 일어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실 때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빨리 병부터 낫게 해주세요. 그것이 제일 급한 문제입니다.” 하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병을 낫게 하는 것에 앞서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중풍병자가 죄사함을 받게 하시려고 그들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다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리시면

응답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안되는구나,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할 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시고

주님의 뜻과 계획을 가지고 일 하시고 계십니다.

예수 안에는 어제와 오늘이 있듯이 내일도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그의 제자 가슴에 안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주셨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니다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니다 (새찬송가 135장)

https://www.hellosisterm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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