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Writer's pictureSister Mary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

세상에는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얼마전 언론을 통해서 경제위기를 격고 있는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생닭 한마리를 사기위해서 필요한 지폐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지폐의 양은 13갤론의 쓰레기 봉지에 가득 담을 만큼 많아 보였습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말미암아 화폐의 가치가 휴지조각 같이 되어 버리자 가치가 보장되는 금을 캐려고 금광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기사를 읽고 이런 일도 생길 수 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 정책의 변화에 따라 현금의 가치가 변하고 정부의 정책이나 국제정세에 따라 우리의 삶의 환경과 조건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나 지진 그리고 토네이도 등의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안전하던 일상의 삶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다 깨어져버린 젏은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B.C.605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첫번째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왕족이었습니다.

바벨론은 그들의 이름을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아벳느고 라는 바벨론의 우상 이름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눈으로 보고 바벨론까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로운 십대 청소년이었던 그들에게 바벨론식 교육을 시켜서 정치적으로 사용하려는 정책에 따라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하여 바벨론 사람처럼 살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패망한 그들의 나라와 가족들을 보호해줄것으로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환경과 조건이 변하고 이름 까지 바꾸어야 상황속에서 그들이 붙잡았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뜻을 정하여’ 라는 다니엘서 1:8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세한탄을 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마음과 뜻을 정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거룩한 신앙을 지키는 길을 선택 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환경과 조건이 변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뜻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닥칠 때마다 같이 모여 기도함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것을 다니엘서 2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후 왕은 다니엘을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높은 자로 세우고 다니엘의 세친구는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것 같이 보이는 그들에게 또다른 어려움이 닥칩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금신상에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다니엘서3:5-6) .

그러나 그들은 신상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결단을 했다는 것이겠지요.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결국 풀무불 속에 던저 졌습니다. 그러나 불이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서 3:17-18,27)


우리나라에도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 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가슴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민족에게 그들의 조상신이나 그들의 전쟁 공로자들을 모신 신사에 강제로 절을 하게하고, 예배시간에는 먼저 일본천황을 숭배하고 난 다음에 예배를 드리게 하는 일까지 강요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기독교학교들은 폐교가 되었고 기독교내에서도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는 교단들이 생겨났으나 이에 동참하지 않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성도님들과 목사님들은 감옥에 가고 순교를 했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기독교 박해도 있었습니다. 도미티안 (Domitian, AD 81-96)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 부르며 로마에 금은으로 우상을 만들고 황제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님으로 섬기기때문에 이를 거부하게 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신사참배를 강요당하지 않고, 황제의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있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독교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까지도 흔들어 놓는 시대의 흐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와 마술과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같은 육체의 행실에 빠져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 5:19-21)

그런데 이러한 죄악된 행실과 마약과 음행과 사치와 향략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려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섬기며 죄와 의를 선택해야하는 순간이 온다면 주저없이 의를 선택하고 죄를 멀리 하는 거룩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마음과 뜻을 정하여야 합니다.

어떠한 주제에 관해서도 거룩함과 더러운 죄는 섞일 수 가 없습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1)

77 views0 comments

Recent Posts

See All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