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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ister Mary

욥과 나오미

큰 규모의 지진은 아니었지만 수년 전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집터가 몇 분 동안 좌우로 흔들리는 무서운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비와 바람을 피해 집으로 들어가거나 우산을 쓸 수 있겠지만 땅이 흔들리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터가 흔들리는 감당하기 힘든 좌절과 상실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생의 터가 흔들리는 큰 환난을 격은 성경 속의 인물로는 나오미와 욥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다땅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으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그 후 엘리멜렉이 죽고 몇 년 후 두 아들도 죽게 되자 며느리 룻과 함께 유다땅으로 돌아온 나오미가 고백한 말입니다. “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 (룻기 1:20-21)

모압은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가족은 흉년을 피해 경제적으로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 모압으로 이주를 하여 10년을 살았습니다.

나오미는 그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불행을 격은 후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다시 유다땅 베들레헴을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가면 처음에는 풍족하게 될 것 같아 보여도 얼마 후에는 빈손이 되어 돌아간다고 나오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하고 죄를 지었을찌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돌아갈 고향과 도와줄 친족(보아스)이 나오미에게는 있었습니다. 그 후 나오미가 모압에서 데리고 온 며느리 룻이 보아스에게서 낳은 아이의 이름은 오벳이며 나오미가 오벳을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는 훗날 다윗왕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습니다. 나오미는 인생의 터가 흔들렸던 큰 불행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은혜로 영육간에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욥인데요 ,

욥기의 주제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욥기를 읽을 때 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욥기의 마지막장인 42:1-2에 기록된 욥의 고백은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입니다.

욥기의 이야기는 나오미처럼 자신의 불행의 전후를 이해하고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다고 고백을 하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욥을 내 종이라고 부르시며 “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기를 주께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시면 틀림없이 주를 욕할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욥의 몸에만 사탄의 손을 대지 못하게 하고 욥의 소유물을 사탄에게 다 맡기노라고 하십니다. 이 일 후 재앙으로 인해 욥의 열자녀와 욥의 모든 재산들이 차례대로 모두 다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 1장)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를 항상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는 기적도 일으키시고 환난을 없애주시는 방패같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성경의 여러곳에서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씀 그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는 대로 다 주시고 우리가 지정한 그 때와 장소에 맞추어 기도들이 척척 이루어지게 하는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전능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의 기도와 소원에 맞추시라고 떼쓰는 기도가 아니라 나의 기도와 소원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이사야 64:8)

이사야 45:9에는 “진흙이 토기장이에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진흙된 우리는 토기장이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 까요?

우리의 인생이 금그릇, 은그릇이라고 교만해서도 안될것이며 나무그릇, 질그릇이라고 열등감에 빠져서 살아도 안될것입니다.

주인이 귀히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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