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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ister Mary

우리가 믿던 하늘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바다를 보고 참 신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만드신 것을 믿음으로 알고 있었지만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찾아보니

욥기에 그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올 때 누가 그 물을 막아 바다의 한계를 정하였느냐?

그때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그것을 감싸며

해안으로 그 한계를 정하여 '네가 여기까지만 오고 그 이상은 넘어가지 못한다.

너 교만한 물결은 여기서 멈춰라' 하고 말한 자는 바로 나였다" (욥기38:8-11)


사람들은 과학과 자연 그리고 우주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고 있지만

누가 나를 만들었는지, 누가 나의 주인인지,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 만드신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과 물질, 자녀, 그리고 건강과 명예를

주인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들을 자신이 섬기는 신의 자리에 같이 올려놓고 두 주인을 모시기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 중에는 주인 되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올려놓고

주인으로 섬기려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주인이 바뀌면서 생기는 사건들 중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그의 인생의 주인 자리에 하나님과 이삭을 같이 올려 놓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상속자인 이삭에게 지극한 사랑을 쏟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요구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아브라함의 상태는

하늘같이 섬기고 사랑하는 ‘이삭 이라는 하늘’이 무너져야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 이었던 믿음의 조상의 자리로 돌아 갈 수 있기에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인이심을 믿고 순종하여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시는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숫양을 아들 대신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불렀으므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14)


우리 중에는 남편이라는 하늘, 자식이라는 하늘, 사업이라는 하늘, 자존심과 건강의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던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가지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내 주인의 자리에 다시 모시는 낮아지는 마음으로 엎드릴 때 우리 앞에 ‘여호와 이레’ 라는 은혜의 문이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저에게는 특별히 자식이라는 하늘을 내려놓은 경험이 있습니다.

막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예수님께서 저에게 ' 너는 그동안 힘과 노력을 다해 자녀들을 키운것을 내가 안다. 이제는 내가 다 알아서 돌볼것이니 자식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같이 사랑하고 아끼던 자식의 하늘을 벗어나서

하나님 한분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 후에도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리위에

여러가지 다른 것들을 저도 모르게 올려놓고 고민하고 매달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고 못난 저를 돌이켜 보면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신 주님 앞에 겸허히 엎드려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아십시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며 그분이 돌보는 양 떼들입니다 (시편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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