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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ister Mary

우리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얼마전 저는 중세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수업후에 제출하는 소논문에서 '초기기독교 수도원 운동'에 대해 썼던 기억이 납니다.

 

타락해 가는 세상과 그 세상과 연합하여  세속화되어가는 교회를 떠나

깊은 사막과 동굴에서 침묵하며 수도하던 수도사들이나

공동체 수도원을 형성하고 거주하는 수도사들에게는

기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노동 또한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속을 떠나 형성된 수도원이라 할지라도 세대가 흐른후에는

내적으로 타락하고 부의 축적으로  붕괴되어 버렸던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과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고위 관리 출신으로 이집트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아르세니우스는

귀족 부인네들이 배를 가득 채우고 바다를 건너 이집트 수도원 순례를 올까 봐

걱정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 수도사들은 세상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세상은 광야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기독교 수도원의 역사. 55p. 가를 수소 프랑크 지음)

 

저는 가끔 수도원이라는 장소와 개념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고통을 없애 주고

성도의 거룩함을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아르세니우스가 말했듯이

우리가 세상을 떠나 그곳에 들어가서 욕심을 다 버리고 살더라도

사탄은 그곳까지 따라와서 유혹하고 넘어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먹을것을 위해 일을 하고

사회적인 위치와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생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이 주는 고난의 무게와 고달픔과 함께

때때로 만나는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우리가 살면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이 좌절되고 이루어 지지 않으면

당연히 당황하고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묻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야 55장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쉽게 이해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욥의 한계

갑작스러운 고난으로 심히 고통을 받았던 사람중에 가장 먼저 떠오는 사람은

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이라는 울타리로 둘러주셨던 모든 소유물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렸을 때, 그의 반응은 이러 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1:20-22)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사탄이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살과 뼈를 한번 쳐 보십시오.

그러면 당장 그가 정면으로 주를 저주할 것입니다.”

“좋다. 네가 그를 네 마음대로 하여라. 그러나 그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아라.”

그래서 사탄은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악성 종기가 나게 하였습니다.

 

그후, 

욥기 3장에서 욥은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태어났던 그 날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머니의 배에서 죽어 나왔더라면, 나오자마자 죽었더라면,.

 

마음과 육신의 극심한 고통끝에 나온 욥의 탄식은

‘하나님 너무하지 않으십니까, 죽는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습니다’

라는 뜻으로 저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과  답을 하나님께 찾고자 했습니다

드디어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세울 때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많이 알거든 대답하라”

너는 지구의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느냐? 알거든 대답하여라. 

빛이 어디에서 오고, 어둠이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욥기 38:4,18,19.쉬운성경)

 

사람의 지식과 지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견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이해하고 알아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아도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욥은 복을 누릴때도,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온전히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욥은 고난의 끝자락에서 결국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 대답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기 42:5,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26,31,32)

 

우리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이 창조주 이시며 우리 인생의 주권자 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 것 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제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에

우리의 인생과 자녀들을 맡기고

염려를 버리고 믿음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열왕기상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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